<감상문> 윤동주의 서시
- 에세이
- 2019. 9. 19.
‘서시’ 감상문
영화 ‘동주’를 보고 나서 머릿속에 계속 ‘부끄럼’ 이라는 단어가 지워지질 않았다.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에게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라고 권하자, 윤동주는 그러면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한다. 정지용은 ‘부끄럼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부끄럼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일본 경찰이 윤동주에게 학생운동에 가담한 것을 시인하고 서명을 요구하자, 그는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못하겠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것이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다.’라고 말한다. 이념과 행동의 한계에 대한 부끄러움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에 표현한 것 같아 ‘서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시’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일관된 일제강점기 시대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 이다. 시의 주제는 한 점 부끄럼 없는 참된 삶을 살려는 의지와 신념을 노래한 작품이다.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이 작은 일에도 양심을 지키고 살아가고 싶어 했으며,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에서 처럼, 비극적인 현실에서도 슬픔에 빠지지 않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오려고 했다. 또한, 자신이 살아 오면서 부끄러웠던 점을 반성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도 보여졌다. 별처럼 살고 싶으나 바람이 자꾸 방해를 해서, 별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서시’를 처음에 읽었을 때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표현을 보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감탄했었다. 그러나 영화 ‘동주’를 보고 다시 읽은 ‘서시’는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윤동주는 일제에게 굴복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사촌 송몽규 처럼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부끄러웠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시에 그것을 표현했다. 물론 지금이 그때 처럼의 시대적 상황은 아니지만, 시를 읽은 후 그 동안의 내 생활에서 나를 돌아 보게 됐다. 중학교 때 여러 친구들에게 외면 당하는 친구를 보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일, 학교행사가 나하고 아무 관련 없다는 듯 무관심하게 보냈던 일, 부모님이 해주시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감사히 여기지 않은 일, 나 때문에 우리 집에 오게 된 강아지를 돌보거나 놀아주지 않은 일, 부모님께 거짓말 하고 학원에 가지 않은 일, 부모님과 함게 광화문 광장에 가봤지만 사실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던 일. 그것이 왜 부끄러운지 몰랐던 그 일 들이 지금 모두 부끄럽게 느껴진다. 윤동주 시인은 24살의 나이에 이 시를 쓰면서 매일 반성하고 죽는 날 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그와 나는 그렇게 많은 나이 차이가 아니다. 그래서 더 부끄러운 것 같다. 나 또한 비록 평생은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부끄럼 없이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항상 이 말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싶다. ‘부끄럼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부끄럼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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